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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의 마음으로 막힌 벽을 넘고자 했던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순간들(4): 1955년 첫 여성 목사 안수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때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입국한 1885년을 기준 삼더라도, 첫 번째 한국인 여성 목사가 세워진 것은 무려 70년 만이었다. 1955년 감리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전밀라, 명화용이 목사 안수를 받아 최초의 한국인 여성 목사가 됐다. 그 이후 꼭 70년 세월이 흘렀다. 70년은 성경에서 상징적 숫자인데, 한국인 여성 목사 안수와 관련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 번째 70년(1885-1955)은 여성 목사 안수를 향한 지난한 개척의 길이었고, 두 번째 70년(1955-2025)은 그런 결정을 구현하려는 험준한 여정이었다.
이미 2000년 전에 성경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인종과 계급과 성별의 차별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성명서였다. 이런 정신에 따라, 교회는 지난 2000년 동안 선한 일에 앞장서 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개혁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항상 선한 일에 지혜롭거나 용기를 보이지는 못했다. 때로는 교회가 세상을 선도하기보다 세상에 압도됐고, 그로 말미암아 분쟁과 갈등 속에서 지리멸렬했다. 그래서 교회의 개혁은 더디고 부분적으로 성취됐다. 여성 목사 안수도 마찬가지다.
한국교회의 여성 목사 안수는 남녀 차별을 극복하려는 교회의 전반적 사역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성 목사 안수가 이뤄지기 전까지 다양한 여성 해방 운동이 진행됐다. 첫째, 여성의 개별적 정체성을 인정하려고 했다. 선교지 여성은 이름도 지위도 공적 역할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독자적 인격체가 됐다. 특히 근현대서구선교운동 말기에 서구여성운동이 시작됐다. 여성 선교사는 공식적 기독교 사역자인 동시에 독립적여성 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성 선교사는 여성교육을 통해서 여성의 입지를 넓혔다.
둘째, 여성의 정당한 지위를 확보하려고 했다. 특히 여성 의료선교사 로제타 홀은 한국인 여성 의사 배출을 위해 애썼다. 그런데 개혁 세력을 자처했던 선교계가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선교지에 여성 의료선교사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지에서는 ‘남성-의사, 여성-간호사’라는 남녀 차별적 구조를 적용했다. 그 결과 여성 의료교육(조선여자의학강습소, 1928년 설립)은 선교부 사역이 아닌 선교사 개인 사역이 됐고, 이후 한국인이 운영하는 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거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발전했다. 기독교 선교사역이 민족사학의 일부가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셋째, 여성의 대표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 목사 안수이다. 성직자주의는 타파해야 하지만 성직자가 교회의 중심축을 이룬다는 점에서, 여성 목사 안수는 교회 정상화의 관건이다. 왜냐하면 안수를 받아야 교회의 교리(가르치는 사역)와 정치(다스리는 사역)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목사 안수가 현실이 되기까지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쳤다. 1930년 감리교회가 설립되면서 여성 안수를 결정했는데, 미국 감리교회보다 9년이나 앞선 결정이었다. 다만 한국인이 아닌 여성 선교사에게 국한됐다. 1951년 예수교재건교회에서 최덕지가 명예 목사로 추대됐고, 1955년 5월 4일 목사 안수를 받아 안수 목사가 됐다. 이때 김영숙, 소갑숙이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이후 여성 목사 안수가 중단됐다. 1955년 3월 13일 감리교회에서 전밀라, 명화용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이후 20세기 후반에 한국기독교장로회(1956 장로 안수; 1977 목사 안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1996 목사, 장로 안수),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1997 목사 안수), 21세기에 대한성공회(2001 사제 안수), 기독교대한성결교회(2005년 목사 안수),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2012년 목사 안수)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각 교단이 이 과정에서 단서 조항을 붙이는 등 소극적 태도를 드러내기도 했고 여전히 많은 교단에서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교회가 사회보다 뒤진다면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