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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사방을 돌아다닌 ssul : 가라 땅끝까지, 걸어서, 말 타고, 가마 타고, 배 타고, 자전거 타고, 기차 타고, 자동차 타고 (안교성)

2025년 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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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어떤 동사로 묘사할 수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가라’(go)일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으로 알려진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경우도, 사실 문법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로 삼아’지만, 독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너희는 가서’이다. 따라서 선교는 무엇보다 ‘가는 일’로 알려졌다.


근현대서구선교운동의 역사를 보면, 선교사들은 본향을 떠나 머나먼 선교지로 갈 때, 대개 배를 탔다. 그래서 선교사는 처음 도착한 개항지(혹은 수도)에 현지 선교부를 설립했다. 자연스럽게 개항지를 중심으로 사역이 이뤄졌다. 이런 선교를 개항지 선교 혹은 해안선 선교(coastland mission)라고 한다. 그러나 자칫 이런 형태가 고착될 수 있다. 그래서 선교지 곳곳으로 찾아 나서는 내지 선교(inland mission)가 대두됐다. 오늘날은 지리적 오지 개념을 넘어 인종적 오지 개념에 따라 미전도종족 선교(unevangelized people mission)가 발달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도 다양한 교통수단을 사용하여 한국 방방곡곡을 찾아 나섰다. 최초에는 주로 개인별로 선교지 탐방 여행이 이뤄졌고, 곧이어 각 지역의 중요 거점에 선교지부를 개설했다. 역사 발전에 따라 교통수단도 발전했는데, 선교사들은 당대의 교통수단도 이용했지만, 새로운 교통수단을 앞장서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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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19세기 말까지 대부분 사람은 걸었고, 신분 높은 사람은 말이나 가마를 탔다. 선교사들도 여행을 갈 때, 걷거나 말과 가마를 탔다. 하운(河運, 강을 통한 이동)이 가능한 지역은 배를 탔다. 배는 꽤 유용한 이동수단이었다. 천주교의 경우이지만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의 집과 광주에 있는 천진암이 육로로 가면 멀지만, 배를 이용하면 바로 강 건너이다. 이동수단과 지역의 흥망은 깊이 연관이 있어 하운이 쇠퇴하면서 지역도 쇠퇴하는데, 대표적으로 여주를 들 수 있다.

아무튼 선교사들은 배를 즐겨 이용했다. 지금도 양수리에서 양평 쪽으로 가다 보면, 선교사가 배를 이용해 개척한 교회들이 많다. 휴양지도 배로 접근이 편리한 한강 변이나 황해도 송천(솔내), 강원도 원산, 해방 후 충청도 대천 등에 만들었다. 언더우드 가문은 배 애호가로 유명한데, 원두우(H. G. Underwood)의 아들 원한경(H. H. Underwood)은 한국 선박 관련 책을 썼고, 손자 원일한(H. G. Underwood)은 6.25전쟁 중 행주 도하작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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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부터 새로운 교통수단이 차례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서재필, 윤치호 등이 자전거를 탔는데, 선교사 중에서도 평양에서 사역하던 리(Graham Lee)나 웰즈(James H. Wells)는 자전거로 평양과 서울을 오갔다. 선교사는 자전거를 타다가 위험한 순간을 맞은 경우가 많았다. 철도는 말을 대신하는 철마라는 이름으로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떠올랐다. 경부선 개설로 공주 대신 대전이, 경원선 개설로 원주가, 경의선 개설로 의주와 선천이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선교지부도 신설되거나 이동했다.


003.png 오늘날 교통의 총아인 자동차 시대가 돌입하자, 선교사도 자동차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끔찍한 사고도 났다.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벨(Eugene Bell)이 서울에서 광주로 자동차를 타고 귀가하다가 병점의 철도 건널목에서 충돌사고가 나서, 부인 마거렛(Margaret W. B. Bell)과 동료 선교사 크레인(Paul S. Crane)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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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물리적인 이동도 중요하지만, 이동통신을 통한 이동도 중요하다. 앞으로 선교사들은 이동통신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나아갈 것이다. 선교 140주년을 맞아, 선교사와 교통수단을 생각해 보는 것도 할 만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