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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순간들(5) : 믿음도 하나이니 성경도 하나라고?

2025년 10월 29일

벽 너머의 벽 Wall Beyond Wall

사랑과 평화의 마음으로 막힌 벽을 넘고자 했던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순간들(5): 1970년 가톨릭과 함께 한 공동번역성서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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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고, 복음은 성경을 통해 전해진다. 그래서 선교는 성경 번역을 우선적인 사역으로 삼는다. 성경이 각 나라의 말로 번역되고, 각 나라 사람이 모국어 성경을 읽을 때,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한국교회의 성경 사랑은 유별나다. 먼저 선교사는 쇄국정책으로 인해 한국에 들어올 수 없자, 국경 밖에서라도 성경을 번역했다. 로스 선교사는 만주에서 특별히 국경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서상륜 등 한국인을 만나 한글을 익히고 성경을 함께 번역했다.드디어 1882년에 누가복음 쪽복음(단권 복음)인 『예수성교누가복음전서』를 출간했고, 1887년에는 신약 전체를 담은 『예수성교전서』를 출간했다. 그런데 한국인도 가만있지 않았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이수정은 예수를 믿자마자 성경 번역에 나서, 1885년 마가복음 쪽복음인 『신약마가전복음서언해』를 출간했다. 때마침 일본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가지고 들어온 성경이 바로 『신약마가전복음서언해』였다. 선교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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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으로 인해 외국인 입국이 가능해지자, 선교사는 1884년부터 속속 입국했다. 입국이 시작된 지 3년 만에 만주에서 신약전서가 출간되던 해인 1887년에 벌써 성경번역을 위한 위원회를 결성했다. 1911년 국내 번역본으로 신구약 성경 전체를 담은 『성경전서』가 출간되어 공인본이 되고, 먼저 만들어진 로스본과 이수정본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한국 개신교는 하나의 성경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천주교는 주로 교리와 신앙생활에 관한 신앙 서적을 출간하고 이를 위해서 발췌한 성경을 번역하다가, 1941년에 신약전서를 출간했다. 그 결과 1940년대부터 개신교와 천주교가 각각의 성경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에 세계적으로 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가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가 출간되었다. 1971년에는 신약전서가, 1977년에는 성경전서가 출간되었다. 한국의 신구교 모든 교회가 하나의 성경을 갖게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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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중단된 줄 알았던 북한교회가 1970년대부터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회 건축, 신학교 설립, 성경 및 찬송가 출간 등 일련의 작업이 뒤따랐다. 1983년에는 신약전서, 1984년에는 구약전서가 각각 출간되었고, 2010년에는 『문화어 성경』(문화어:북한 표준어)이 출간되었다. 1980년대 출간된 성경을 분석해 보니, 남한의 『공동번역 성서』을 저본으로 하여 북한의 표준어에 맞춰 개정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성경 번역과 개정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인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성경 번역 전문가인 민영진 박사가 이 문제를 궁금해하다가 북한교회 지도자로부터 그 해답을 얻었다. “공동번역 성서 평양 교정본을 작업한 실무자가 다름 아닌, 이눌서 선교사의 비서였던 이영태 씨라는 것이다.”([민영진 칼럼], “『북한성경』 제작 실무자”, 「새가정」) 이눌서(레이놀즈) 선교사는 한글성경 번역에 헌신한 자였고, 이영태는 개국 이전에 한국에 와서 성경을 나눠주려다가 목숨을 잃은 토마스 선교사에게서 성경을 받은 이의 후손이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다. 『공동번역 성서』는 한국에서 개신교와 천주교가 하나의 성경을 갖게 해주더니, 남한교회와 북한교회가 하나의 성경을 갖는 계기도 마련했다.


장차 통일이 되면, 우리는 어떤 성경을 가지게 될까? 과연 통일 한국의 모든 교회가 하나의 성경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부터 ‘통일 성서’를 준비해 가야 하지 않을까?